글들/느낀생각

과잉생산공황

멀리가세 2008. 10. 25. 17:10

언론에서는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의 종언을 이야기하지만 내 생각에 작금의 사태는
단순한 금융공황이 아닌 것 같다. 즉, 위기가 금융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97년 IMF사태때도 우리나라를 비롯, 중남미, 동아시아, 러시아가 유동성 위기와
함께 실물경제의 위기도 함께 겪었지만 그때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당시는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촉발된 측면이 컸고 일부 국가의 문제였으며, 따라서
미국이나 유럽, 중국 등이 사태를 수습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기때문에 97년사태의 확대판이면서 동시에 질적인 변화를
동반하지 않을까 싶다. 97년의 경우는 부분적인 몇몇 국가의 금융관리 잘못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단순히 그렇게 해석할 수 없게 되어가는 것 같다.

[1] 사회주의 -> 복지국가 -> 사회주의 몰락 -> 신자유주의
1917년 소련의 성립과 성장은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커다란 숙제를 남겨줬다. 대안적
사회체제가 존재하는 마당에,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빈부격차의 심화, 서민들의 비보호 등
사회안전망을 확보하지 않으면 계급갈등이 확산되고 그 대안체제인 사회주의로의 전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변형이 필요했고
그에 대한 응답이 복지국가로 나타났다. 그러나 90년을 전후하여 사회주의권이 스스로의
모순으로 붕괴하자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신자유주의의 경향(사회주의의 패배가 가시화
되고 자본주의간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싹튼 대처리즘으로부터)이 노골적으로 확산됐다.
더이상 사회주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동시에 몰락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별다른 대안없이 유일한 현실체인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기 위해 안달을 하며 선진자본
주의국가에 줄을 서서 시장에 편입되어 갔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시장의 무지
막지한 확장이다.
이런 상황은 자본이 시민/국가의 통제에서 확실히 벗어나서 사회안전망의 해체, 공공기업
의 민영화(즉, 자본에게 공공기업 넘겨주기인데 공공기업도 복지국가의 사회안전망적인
측면을 또한 가지고 있다.) 등을 단행하게 한다.
요약하면 복지국가는 사회변혁을 두려워한 자본이 일정의 양보를 통해 내적 안정을 도모한
시스템인데 공산권의 몰락을 계기로 복지국가의 이념을 저버리고 무제한의 시장주의(신자유
주의, 이는 곧 무한경쟁주의이다)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이의 결과는? 잊어 버리고 있던 과잉생산공황의 유령이 전세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2] 90년전후 사회주의 몰락으로 자본주의에 편입되었던 나라는 매우 많다.
동유럽, 러시아, 중국 등이 전형적이지만, 비단 이 나라뿐만 아니다. 좌파의 전통이 깊은 중남미
를 비롯, 제3세계의 나름대로의 사회주의 국가(네루식 사회주의의 인도 등)도 그 이전 소련
과의 유대를 정리하고 자본주의로 진출했으며, 대세를 눈치챈 중남미, 동남아시아의 좌익
반군들도 싸움을 정리하고 정부와 타협하여 시장의 질서로 편입되었다.
정리해 보자. 앞에 열거한 나라들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자본주의 시장은 예전보다 두배쯤은
넓어진 것 아닐까?
이들을 시장에 포섭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이 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일까?
세계화!
아류 제국주의 흉내를 내던 우리나라의 90년대를 기억해 보라.
동남아로, 중국으로, 중앙아시아로, 몽고로, 동유럽으로!!!
이렇게 제국은 투자를 하고, 시장편입국가는 생산을 해댔다.
그렇게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다.

[3] 예고편은 있었다. 바로 1997년에. 중남미에서 시작해 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에서 종결을
본 금융공황. 그러나 당시는 중국의 성장이 지속되었고 미국이나 유럽이 위기를 받아 줄 수
있는 여력이 있었던 까닭에 어찌어찌 넘어갔다. 참, 이 시기에 미국의 IT산업도 막바지에 이르
렀다가 거품이 꺼졌는데 미국은 금융산업의 확대를 통해 소비의 위축을 막으면서 위기를 넘어
갔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선진국과 개도국은 두가지 갈래길로 나누어 걸어간 것 같다.
선진국은 개도국의 제조업과 가격경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제조업을 포기하고 주로 금융산업
과 유통산업의 확대를 통해 내수확대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것은 두가지 문제를 야기하는데
첫째는 당연히 제조업의 공동화로 그에 딸린 노동자들의 고용을 축소하는 것이며 둘째는 금융산업
(여기에는 부동산도 포함된다. 부동산의 금융화=투기화 경향은 달리 지적하지 않아도 다들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의 확대가 '기만적인 자산가치(주식,부동산값의 급등) 상승'이라는 신기루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선진국이 노동임금 하락을 자산가치 상승으로
보전해주는 정책을 폈다고 진단한다.
한편, 중국을 비록한 신흥 시장편입국은 제조업 기술력을 비상히 발전시키면서, 선진국의 자본과
투자를 받아들여 급속하게 생산력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세계의 공장'이 됐다. 그러나 생산품은
수출지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선진제국이 소비력을 잃게 되면......

[4] 거칠게 단순화시키면 선진국의 구매력(금융자산가지 상승에 따른 소비확대) 상승과 시장편입국의
생산 확대가 선순환 구조를 이뤘던 것이 90년대 후반에서 현재까지였던 것 아닐까 싶다. 그러나
선진국의 금융산업은 무한정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파생상품을 담보로 또 파생상품을 만들도,
또 그것을 담보로 또 만들고... 우리나라 부동산도 한번 보자. 3-4년전에 1억 5천이면 사던 아파트가
3억으로 뛴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들의 임금은 2백만원이었다가 230만원정도로 밖에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오히려 어떻게 빚을 내서든 '더 오르기 전에' 집을 마련해 놓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가계대출이 늘어난다. 그렇게 해서 어지간히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다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마련한다. (물론 아예 돈이 없어 전세 끼고 대출 받고 해도 못마련하는 사람들은 애시
당초 포기하고 산다.) 자, 보자. 전세 끼고 대출 받고 살 사람 다 샀다. 그 다음에는 누가 사나?
88만원 세대가 고 몇년사이 갑자기 돈을 많이 벌어서 부동산 시장에 급속하게 유입되나?
집값이 오르려면 계속해서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든가, 아니면 이미 집 있는
사람들이 모두 투기꾼화 되서 계속해서 집을 사고 팔고 사고 팔고 사고 팔고 해야되는데 이렇게 모두가
투기꾼화되면 새로운 수요에 의해 유입될때처럼 수익을 항상적으로 볼 수 있을까?
오래전에 유행했던 피라미드사업이 떠오른다. 이 사업방식의 최대의 모순점은 끊임없이 하위가입자가
생겨야 한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도 끊임없이 유입자가 생겨야 하는데 자연발생적인 유입자(연령이
차서 결혼해서 집이 필요하던가 얘가 생겨서 넓혀 가거나)의 생성비율이 최근 2-3년간 집값의 상승률
을 쫓아가 집값 상승을 보장해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5] 원래 간단하게 쓰려던 건데 말이 또 길어졌네. 별로 맞지도 않을 것 같은데ㅠㅠ.
아무튼 요약하면 이렇다. 금융을 통한 자산가지 상승으로 구매력을 확보하던 선진국에서 제동이 걸림에
따라 생산을 담당했던 신흥시장편입국도 같이 침체를 맞는다. 따라서 이번 위기는 단지 금융부분의
위기만 해소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물경제부분에서 과잉된 부분이 걷히기 전까지는 계속
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환율위기가 겹쳐 상황이 더 불확실해지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환위기에서
촉발된 유동성 위기 자체는 그럭저럭 넘어가리라 본다. 다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만.
구매력의 감소가 한동안 계속 이어져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지 않을까 싶은...
어쩌다 재수 없어 부동산 거품이 '급속하게' 꺼지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그냥 가능성뿐이고 대세는 경기침체 국면이 장기화되는 방향 아닐까?
설령, 97년 사태와 같이 다시 급작스레 주가가 살아 나고 다른 대안산업(옛날 IT같은)이 부각되면서
일거에 '랠리'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것 또한 일시적인 극복에 그치고 다시 부활한 과잉생산공황의

문제에 세계가 계속 노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윽, 짧은 지식으로 엄청 많은 이야기를 쓰자니 시간이 안되네.
원래 경제예측은 해서 맞는 게 없는데... 이러다게 1-2달 지나 또 주가, 지가 폭등할지 모르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