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끄적여본시
봄기운
멀리가세
2012. 4. 23. 15:11
사촌형이 왔다.
어쩐일로 서울나들이를 다 했어요?
그냥 심심해서.
점심을 같이 했다.
더 심해졌다.
19년간 자신은 가브리엘로 살아 왔는데
5년전에 다른 이름이 스며들어
그때부터 카카멜라가 되었단다.
작년 11월 몇일인가부터 3일간 천지개벽이 일어나
세상이 싹 바뀌었단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아무튼 세상이 바뀌어 어둠의 시대가 가고
빛의 시대가 왔단다.
자신의 발병원인이 접붙여 태어난 자식이어서 인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믿을 이 없을 줄 알고 일체 발설치 않고 살다가 작년에서야 때가 왔다 느끼고
큰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크게 깨달으시는 모습이었단다.
접붙여 태어났다는 게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건만
그 말뜻을 알아들은 큰아버지는 올초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얘기를 식사시간 내내 떠들다가
어느순간 뚝 말을 끊고
가야겠다
일어선다.
대문을 나서자 앞집 라일락 향기가 훅 밀려온다.
담장 위에 덧친 철울타리와 얽혀 가로로 길게 뻗으며
촘촘히 매달린 보라색 꽃송이들.
하마 이 꽃들이 정신병원에 딸린 그의 요양소 마당에도 피었던 게지.
그래 반기는 이 없는 나들이에 나선 거겠지.
봄기운에 들썩이기는 나나 그나 다를 게 없구나.
하, 참 꽃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