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읽은시

비둘기 (편린)

멀리가세 2006. 6. 4. 19:55
 

<비욘드 사일런스>-첫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얼어붙은 강위로 스케이트를 지치는 오버코트의 여자. 먼 발치에서 그미를 바라보는 어린 소녀. 유대이면서 동시에 거리인 것. 꼬리를 무는 연상.

닥터 지바고, 노르웨이의 숲, 니벨룽겐의 노래, 브뤼겔의 그림 <설경의 사냥꾼들>.

북구의 한기는 각각의 존재를 더욱 분명하게 부각시킨다. 동시에 존재의 부각이 심화될수록 그 거리의 심연도 섬뜩하리만치 깊어지지. 한기는 어떠한 양태로든 이격의 표현에 적절하다. 전체와 개인간의 간격이든, 개인간의 거리감이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유대감이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바로 그 지점에서 배태되지 않을까? 거리를 인식하고 상대의 세계를 인정하려는 노력의 궤적을 유대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비둘기

                    권터 아이히



밭을 지나 저쪽으로 비둘기들이 날아간다 -

날개를 한 번 치는 것이 아름다움보다 더욱 빨라

아름다움은 그것을 따르지 못하고,

나의 마음 속에 불안으로 남는다.


비둘기집 앞에서, 녹색 페인트칠을 한 그 조그만 새집 앞에서,

비둘기들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나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일일까,

땅을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은 얼마나 날카로울까,

그들은 어떻게 모이를 쪼아 먹으며

또한 매가 날아오는 것을 알아차릴까,


나는 비둘기들을 두려워하리라 마음 먹는다.

나는 말하코 싶다. 네가 그들의 주인은 아니라고,

네가 모이를 뿌려주고

네가 그들의 깃털에 통신문을 매달고,

네가 그들을 예쁜 모습으로 치장해 주긴 하지만, 새로운 색깔,

머리와 발목의 새로운 깃털,

너의 힘을 믿지 말라.


그러면 너는 놀라지 않으리라.

네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너희들의 곁에 숨겨진 왕국이 있어.

알아낼 수 없는, 소리없는 언어가 있고,

힘은 없어도, 건드릴 수 없는 다스림이 있고,

또한 비둘기가 날아갈 때 결단이 내려진다는 것을 알아도.



 

* 귄터 아이히는 독일사람이다. 독일은 거대하고 객관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낸 나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과 의지를 강조하는 철학의 거장들을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 시는 후자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이 시에서 유대의 첫발을 보고 싶다. 화자는 소년들에게 비둘기의 날개짓은 아름다움의 영역이 아니라 결단과 행동의 영역이라고 알려준다. 그저 평화롭고 착해보이기만 하는 그들의 세계에도 치열한 생존의 법칙과 존재의 위엄이 있으니 그들의 세계를 얕잡아 보지 말라고 일러준다. 그 사실을 경시하면 너희들이 혼나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이것도 1998-9년쯤 적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