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고산에서
7월 고산에서
전주서 고즈넉한 시골버스길 30분이면 도로 따라 쭉 선 작은 동리 고산에 이른다. 그 끄트머리 가파른 언덕 위로 우뚝 성당 하나 온 마을을 굽어 보는데 성당첨탑, 거기서도 맨꼭대기에 올려진 십자가는 혹서의 땡볕이 고역이겠다.
이제 막 스물을 연 네 모습은 정녕 곱구나. 그 앞에선 7월의 태양도 부끄러워, 제가 내쏜 햇살을 황급히 거둬 들이고 총총히 뒷걸음질 칠듯 싶다. 쉴새없이 재잘되는 네 수다는 한여름 더위를 가르는 매미울음처럼 먼지 이는 시장길을 함초롬히 적실 듯도 싶다.
시장문턱 닭집
비릿한 냄새
철창에 갇힌 닭들
살점 널부러진 도마
칼
아줌마
몸빼바지
붉은 고무장갑
바짝 꼰 파마머리
닭한마리 주세요
아줌마 온화한 눈매의 파행
닭한마리 꺼내지고
목을 후비는 날선 칼
경악스레 파닥이는 날개짓
분수처럼 뿜어나는 피
멋모르고 따라 나선 서울아기는 얼굴이 다 하예져 머리를 떨구었다. 아주머니의 엷은 웃음이 처녀의 얼굴에 잠시 머문다. 그뿐.....
- 닭은 회전통에 넣어졌다.
쿵쿵 온몸을 부딪치는 비명을 몇번 지르고 이내 닭은
통벽에 달라 붙어 고왔던 털들을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아주머니는
목을 자르고 배를 갈라
김나는 내장을 쭉쭉 끄집어 냈다
아주머니도 그랬겠지
스무해 전쯤 어느날, 뉘집 사랑에선가 둘러앉은 또래 친구들과 엄앵란, 신성일 이야기로 밤을 밝혔을테다. 설레도록 흰 처녀의 손은 누이의 다리를 베고 잠든 어린 동생의 이마를 쓸어 내리고 봉숭아물 고운 손톱은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더욱 붉었으리라. 부뚜막 깝쭉되는 쥐새끼에도 놀랐을 스무살. 하늘 푸르고 햇살 좋아 싱숭생숭한 날이면 좁은 마을을 벗어나 훌훌 대처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온통 마음을 흔들었겠지.
어느덧 스무해의 우여곡절
이곳 고산을 뜨지 못한채 그 어디쯤에선가 처녀티 벗지 못한 가슴이 고개 돌린채 닭의 목을 땄겠다. 세월이 또 얼마쯤 흘러서는 아무렇지 않게 닭을 죽였겠지. 그리고 결국 닭은 희망이 되었겠다.
자, 닭 나왔어요
아주머니는 토막난 자신의 허연 속살을 건넸다
네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창백해 나는 멋적게 웃었지.
물끄러미 마주보는 네 눈을 무르고
나는 손을 뻗었다
고왔다
네 손보다 빨리 아주머니에 닿은 처녀의 흰손
건물새를 비집고 그 손에 비낀 붉은 빛 햇살 한줌
너른 들판이 사방을 둘러싼 고산은 황량하고 작렬하는 태양은 아지랑이를 피워 전주로 가는 신작로를 한껏 이지러 뜨렸다. 광야의 고행을 마치고 끝내 십자가에 못박힌 한 사나이의 모습이 언덕위 성당에 아른거린다. 아무래도 부활을 꿈꾸는 십자가는 고역스런 더위에 홍건히 젖은 제 몸을 陰진 시장통 - 이곳에 드리워 식히우겠다.
(1994년 군대 있을 때 90년인가 91년인가 갔던 고산에서의 농촌활동을 갔을때 실제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썼다. 물론 같이 갔던 후배가 닭 잡는 장면을 보고 위 시와 같이 눈에 띄는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은 나의 창작이다. 다만 닭 잡는 걸 보면서 위 시의 구상을 했었다. 나중에 마지막 연을 쓸때는 이상하게 자꾸 루오의 그림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