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책이야기

부석사

멀리가세 2007. 5. 29. 17:38

1. 참 세상에 돈 많은 사람 많다.
200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벌써 팔아 먹는 사람이 다 있네.
올 1월에나 나온 책일텐데. 아무튼 덕분에 나는 잘 봤다.
신경숙의 <부석사 浮石寺>라는 작품이 올 수상작이더군.
실연 당한 남자와 실연 당한 여자가 같이 부석사를 찾아 간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알지도 못하는 외진 곳, 길 패인 곳에 차바퀴가
빠져 그대로 갇혀 버린다. 눈이 온다. 서로가 새로운 인연을 예감한다.
여자는 원래 부석사에 가서 정말로 돌과 돌 사이가 붙어 있지 않고
그 틈이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사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상징이다. 붙어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충일하게 일치할 수 있다는 얘기고,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인간
이란 애초에 고독한 개별자로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연당한
남자와 여자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결국 확인할 수 없었다.
부석사에 갈 수 없었다는 것이 그것을 상징한다.
새로운 인연을 예감하는 두 남녀가 서로의 관계를 통해 돌이 붙어 있
는지 떨어져 있는지 다시금 시험해 볼 도리 밖에 없다.
어쩌면 세상에서 진리란 계속 길을 잘못 드는 것 밖에는 없는지 모른다.

 

2. 부석사에 얽힌 전설은 이렇다.
의상대사가 당에 유학하는 동안 선묘라는 낭자가 그를 흠모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서원하기를 대사가 큰법을 펴는 일을 끝까지
보필하겠다 했다. 과연 그녀는 용이 되어 의상이 신라로 가는 뱃길을
보호하였으며 대사가 부석사에 터를 잡을 때에는 이미 그 자리를 차지
하고 있던 속된 무리들을 내쫓기 위해 큰 돌로 화해 공중에 떠 있으니
무리들이 돌 떨어질 것을 무서워해 모두 떠났다.
그 돌이 바로 부석이다. 부석사에 새가 떨어져 있다는 돌은 이 전설에
서 유래한 것이다.

 

3. 신경숙의 소설 <부석사>는 힘아리가 없어 보인다. 개개인의 내면의
아픔을 감상적으로, 또 다양한 상징물을 통해 주조해 내는데는 탁월하지
만 수동적이고 나약하다. 90년대-그녀는 그 분위기를 대표하는 작가중의
하나일텐데 이젠 서서히 그 감상이 싫어진다.
슬프더라도 차라리 절실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운 부석사>

 

                                 - 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2001년. 이전에 학교 동문모임 게시판을 옮기면서 그 이전에 있던 데이터가
모두 날라간줄 알았더니 한 친구가 모두 다운받아 두었다네. 거기서 얻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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