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저렴한 목숨값 "부킹에 목숨 걸겠습니다!" 연신 이 구호를 외치며 길게 줄지어 도로를 지나간다, 호박 나이트클럽. 주기적으로 지나간다. 주기적으로 목숨을 건다, 부킹에. 오늘부터는 부킹보다 싼 목숨이라고 비웃지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거짓말이면 목숨을 걸겠습니다!" 죽은 이로부터 불법자금을 .. 글들/끄적여본시 2015.04.15
있다면 있는 것으로 양주 덕정 사거리 못미처 장례식장 바로 뒤로 조금 높게 모텔 하나 포개져 있다. 할 맛이 날까? 하 많은 여관의 용도 중에 맨먼저 떠오르는 쓸모라니... 피식 웃고는 이내 생각을 고쳐 먹는다. 누군가의 샅밑으로 얼른 파고들어 금새 다시 태어날, 세상이라는 여관. 죽음이 발기한다. 해탈.. 글들/끄적여본시 2013.09.28
봄기운 사촌형이 왔다. 어쩐일로 서울나들이를 다 했어요? 그냥 심심해서. 점심을 같이 했다. 더 심해졌다. 19년간 자신은 가브리엘로 살아 왔는데 5년전에 다른 이름이 스며들어 그때부터 카카멜라가 되었단다. 작년 11월 몇일인가부터 3일간 천지개벽이 일어나 세상이 싹 바뀌었단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아무튼 세상이 바뀌어 어둠의 시대가 가고 빛의 시대가 왔단다. 자신의 발병원인이 접붙여 태어난 자식이어서 인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믿을 이 없을 줄 알고 일체 발설치 않고 살다가 작년에서야 때가 왔다 느끼고 큰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크게 깨달으시는 모습이었단다. 접붙여 태어났다는 게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건만 그 말뜻을 알아들은 큰아버지는 올초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얘기를 식사시간 .. 글들/끄적여본시 2012.04.23
마구니 소굴 버스 종점이자 기점 못미처 사거리에 옛추억이 있고, 모두랑이 있고, 파라다이스가 있고, 은비가 있다. 메뉴는 똑같이 맥주 양주 유난히 긴 장마비에 끈적끈적한 오후가 지갑에 불룩하다. 비의 낙하를 바라보던 분바른 옛추억도 삶에 감겨 흐느적흐느적 기억의 속살을 드러내고 서로를 더듬다 보면 나.. 글들/끄적여본시 2011.07.15
역전다방 미스 김 다방 - 이젠 늙었다는 말도 호사. 사망대장에서가 아니라면 오래된 시골 역사(驛舍) 언저리에 늘러 붙어 간신히 사윗숨을 고르고 있는 역전다방이나 찾을 일이겠건만 어찌된 일인지 그 많은 미스 김들은 늙지도 않은 채 한여름 대낮 발정난 라디오처럼 지루하게 늘어만 지는 꿈을 부질없이 핥고 있는.. 글들/끄적여본시 2011.02.14
또 헛살아야 한다 나의 시는 모두 고해성사이고 회개이다. 알았지만 하지 못했던 모든 이상(理想)과 원칙에게 푯말을 들려 저 멀리, 한 십리쯤 지나 떨구어 놓고는 나와 그 사이에 땅을 파고 강물을 붓는다. 당신을 늘 찬양하고 읆조리고 사랑하지만 강물을 못건너는 것은 세상 탓이다. 세상 속에 있는 개인은 극히 한미.. 글들/끄적여본시 2011.02.14
내내 밥줄 생각하다 어쩌다 한번쯤 오래 묵은 책 갈피에 바짝 마른 단풍 나뭇잎 꽂혀 있었다 붉다, 여전히 수십년 만에 본 햇살에 놀랐을까 화들짝 떨어지는 잎. 창문틈 새어드는, 기껏해야 애기 오줌 굵기 밖에야 더 못될 바람에도 밀려 구르며, 간신히 추스르고 있던 팔이며 다리며 그예 모가지까지 툭툭 바스러뜨리고 마.. 글들/끄적여본시 2010.11.08
아버지의 바둑 아버지의 바둑 나이 들어 늘지않는 바둑 옆에 바둑책만 늘어난다. 보두 않는 책 다 치울래요. 무심히 던진 어머니의 말씀에 치우긴 뭘 치워, 다 보는 책이야!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 늘지않는 민주주의 옆에 노무현 강희남 늙은이의 시신이 쌓인다. 까마득하여라 옛날에는 젊은이가 쌓였었는.. 글들/끄적여본시 2009.06.22
방심 방심 4월 첫째주 일요일 오전 11시 里門洞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앞 비탈을 부리나케 내닫는, 산동네 코흘리개의, 천원짜리 지폐 한장 꼭 쥔 손에는, 꽃샘추위 지나갔다 마음 풀고 다시 느릿느릿 강림하던 봄의 목도 그만 휙 낚아채여 대롱 대롱. 글들/끄적여본시 2009.03.30
12월에 비 12월에 비 내린다. 눈 내리면 포근했을 걸. 스산하게 젖어드는 골목길, 혼령들이 배회한다. 우리 그이 여기 없나요? 우리 안사람 여기 안왔소? 우리 얘 안놀러 왔어요? 집집마다 문을 열고 물어 보건만 이승의 귀에 들릴리 없고 빗소리만 축축히 공명하는 거리에 다리없는 혼들의 발자국 켜켜히 쌓이네. 글들/끄적여본시 2008.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