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저 햇살 햇살 저 햇살 그리 멀지 않은 날의 오후에 와플파이만큼 따스한 봄날에 햇살은 알게 해 줄 것이다 비장하게 품어 두었다가 엉뚱하게 쏟아 버린 그 말 후회했지만 그 봄날 그 오후의 햇살만은 알게 해 줄 것이다. 사랑한다는 그 말 유려하게 쏟아져 온통 세상에 적중하는 햇살 저 햇살 (1999년 무렵) 글들/끄적여본시 2006.06.18
선착장에서 (편린) 선착장에서 꿈 깨어 보니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 눈빛 부라리며 번득이는 이빨로 숨통을 조이던 사자가 나였는지 착한 눈 씀벅이며 마지막 숨 달게 들이키던 사슴이 나였는지 또한 통렬했었고 또한 두려웠으니 동전을 던져 결정할 수도 없는 이 곤혹스런 일 앞에서 종일토록 서성이고 있자니 등뒤로.. 글들/끄적여본시 2006.06.18
바다에 돌멩이 하나 던진다 바다에 돌멩이 하나 던진다 햇살 속에 나의 무덤 있다 내 시신은 물론, 있어왔던 환생의 주술서도 함께 묻혔지 다시 살고 싶어 그 책을 꺼내면 책표지엔 금줄을 둘러치고 적혀 있다. - 책을 덮어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필경 동전을 던졌을 게다 글들/끄적여본시 2006.06.18
계절병 (편린) 계절병 - 목련이 피었다고 말하자 현명한 노인이 머리를 저었다. 목련은 늘 지는거라네. 지상으로 며칠 지는 거라네. 일기예보에서는 한차례 소나기라고 했건만 새벽부터 시작된 굵은 빗줄기는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그쳤다. 네 마음 속에도 비가 왔는지 모르겠다. 계절병의 열기를 내려.. 글들/끄적여본시 2006.06.18
무제 무제 휭하니 바람이 지나고 나서 꽃잎이 졌다. 질때가 되어서 진 것이라도 바람의 탓이다. 바람도 다 사그러질 때쯤 막아선 나무 한그루 있어야 한다. (2001년쯤. 제목을 붙이긴 해야 하겠는데 뭘로 해야 할지 몰라서 무제로 남겨놓긴하는데 언젠가 붙여야지.) 글들/끄적여본시 2006.06.10
첫사랑 첫사랑 봄햇살 넘실대는 카페의 초록색 창틀이다. 안개비 자욱한 아침의 노란색 우비이기도 하고 밤 깊어 외등 옆에 선 목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너는 그림자 긴, 여름저녁 어스름 불현듯 우수를 몰고 오는 바람이다.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6
근거(根據) 투항에 앞서 근거(根據) -투항에 앞서 다이아몬드가 부서지자 이스터섬의 거석들은 철로 저끝 한없이 황홀한 원근법을 바라 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렸다. 그러나 우리는 바벨탑이 무 너지자 혼자서 혼자서 툰드라로 달려가 나무가 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테크노 음악의 질주하는 리듬만큼이나 간결한 엇갈..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5
선운사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 등지고 선 달빛이 곱다 법복 주름을 타고 흘러 천구비 우두커니 꽃을 본다 절담장을 넘어 휘영청 드리운 동백꽃 달빛은 꽃머리를 두드리고 꽃은 잎새를 휘저어 달빛을 흐트렸다 발목을 감고 도는 소용돌이 댕그랑 댕그랑 풍경소리 그예 재촉하고 휘적휘적 꽃을 헤치며 사라지는 기골 ..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5
여름, 도서관에서 여름, 도서관에서 중복을 막 지난 여름, 오후 3시의 수마를 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도서관 곳곳, 널린 수면의 욕망 - 아침내내 잘 버텨내던 그녀마저 엇갈린 팔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입가엔 침까지 흘리며. 창밖으로는 매미의 울음이 길고 어린시절 짝사랑하던 소년은 매미채를 든 채 창문을 넘어 그..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