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고산에서 7월 고산에서 전주서 고즈넉한 시골버스길 30분이면 도로 따라 쭉 선 작은 동리 고산에 이른다. 그 끄트머리 가파른 언덕 위로 우뚝 성당 하나 온 마을을 굽어 보는데 성당첨탑, 거기서도 맨꼭대기에 올려진 십자가는 혹서의 땡볕이 고역이겠다. 이제 막 스물을 연 네 모습은 정녕 곱구나. 그 앞에선 7월..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
안개꽃이 좋은 형 안개꽃이 좋은 형 선배형은 안개꽃이 좋단다 비록 저만으론 한다발 꼭 묶여 고운 이께 못 드려져도 바탕되어 다른 꽃들 밝게 받혀 주는 흔하디 흔한 꽃 안개꽃이 좋단다 안개꽃이 좋은 형은 제 울타리 크게 둘러 놓고 우리더러 들어오�� 하지 않았다 단 한뼘이 될지언정 자기 울타리 치게 하고 그 이..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
새벽버스 새벽버스 1. 버스는 한때 광주의 시민군을 태우고 폭풍처럼 진군했다, 도청으로 2. 바람만 싱그럽다 새벽 6시를 달리는 버스는 꾸벅꾸벅 머리 숙인 졸음들 단발로 싸늘한 흰목 - 중학생 소녀는 꿈을 꾸겠다 c²= a²+ b² 그리고 서정시들, 암기된 ‘일주일에 한번이면 이혼이다’ 간밤 간신히 찧어낸 두..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
이땅의 판검사들에게 이땅의 판검사들에게 지난 시절에도 분명 당신들은 그들의 편이었어요 그래도 우리는 그때 조금은 당신들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서슬퍼런 독재의 광기가 비단 민주주의를 대놓고 부르짖던 혁명가들만 고문과 생존의 위협으로 탄압했던건 아니었으니까요 짖던 개들도 박정희와 전두환 안기부 얘기 ..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
후회 후회 내가 돈 10억만 있으면 내 하고 싶은 것 하며 산다. 그래서 모든 꿈을 10억 이후로 미뤄 놓았다. 이 세상에 이렇게 밀려난 꿈들이 얼마나 많을까 50억개쯤, 아니면 55억? 그래도 나만은 꼭 이루겠다고 위장 한쪽을 덜어내 꿈장을 만들고 소금에 절인 꿈을 정성껏 들여 놓았다. 그 뒤로 나의 일이란 꿈..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
선문답 (편린) 선문답 - 밭에 거름 주는 일 저녁 호수가에서 도(道)가 얼어 죽었다고 온 세상이 법석이다. ‘증인출두요망’ 그를 마지막 본 게 언제지요? 오늘 아침입니다. 처음 본 것은 언젭니까? 역시 오늘 아침이요. 그와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처음 뵙소 인사하고 거름 줄 일이 바빠 그냥 지나쳤소. ..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한 국제여단원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한 국제여단원 그가 중이 된 것은 의외였다 늘 쾌활하고 대담했으므로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물었지 그녀 때문이냐고 그냥 씩 웃더군 대로변에 이를때까지 그와 나 사이에는 새소리, 개울물소리만 흐르고 있었지 잘 있게 묵묵히, 내민 손을 잡으며 그는 말했네 프랑코 때문에 그..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
손가락 손가락 여름의 잎이 다 지고나면 겨울에 나무는 옆으로 뻗는 손가락이 되겠거니 기다렸지 창문너머 나뭇가지 위에 눈 쌓이고 찬바람은 씽씽 그 손가락만으론 겨울을 날 수 없었던 거야 가지는 그예 툭... 아름다워, 흰눈 속으로 배어드는 피, 여전히 배고픈 피 나는 지갑을 열고 가장 안쪽에 꼬깃꼬깃 ..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
한밤의 글쓰기 (편린) 한밤의 글쓰기 편지지를 앞에 두고 꼬박 밤을 세웠다. 해야 하는 말을 찾아 그밤내내 나는 너를 뒤적이고 있었다. 얇은 책자였다고 생각했는데 넘겨도 넘겨도 끝나지 않고 이러다간 우리가 만난 만큼의 시간이 걸려야 다 넘길 수 있지 않을까 더럭 겁이 났다. 밑줄을 그어대며 읽었던 너는 어디에도 없..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
체위 69 (편린) 체위 69 "올 겨울엔 왜 이렇게 눈이 많아!" 눈이 내리자 사람들은 볼멘소리를 해댔다. 아랑곳없이 눈은 쌓여 32년만의 폭설. 우습게도 눈이 쌓일수록 사람들의 불평은 사그러졌다. 동네의 모든 지붕이 하얀 봉분으로 변하자 사람들 얼굴엔 오히려 웃음이 번졌다. 손님이 끊긴 시장통 사람들은 어물전에 .. 글들/끄적여본시 2006.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