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노래 같은... 어려운 시를 좋아했었다. 혹은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온갖 비의와 상징이 가득하고, 스치기만 해도 중상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은 예리한 표현들이 복병처럼 숨어 있다 방심하는 순간 심장이나 머리를 푹 후비고 들어오는 그런 시. 남들과 구별짓고 싶은 치기였을지도 모르겠고, 지적 우월감이었을지.. 글들/읽은시 2011.09.21
초현실과 초월의 간극, 황인숙 시집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기상과 전치하면 서양의 초현실주의 작가나 화가들의 전유물인양 여겨지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도도하게 이어내려온 초현실적인 문학전통이 있지 않았나 싶다. 선사들의 선문답, 이것만큼 기상과 전치와 유머가 김장김치 속처럼 잘 버무려진 것이 있을까? 물론 .. 글들/읽은시 2011.03.28
서정주, <나의 시> 나의 詩 - 서정주 어느 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 안 동백꽃 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아 계시고, 나는 풀밭 위에 홍건한 낙화가 안스러워 주워 모아서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글들/읽은시 2010.09.02
산정묘지 (1) 산정묘지 1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 글들/읽은시 2010.01.28
첫사랑 첫사랑 -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설은미 역 갓 올린 그대 앞머리가 사과나무 아래로 보였을 때, 앞머리에 꽂은 꽃빗이 꽃같은 그대라 생각했네. 하얀 손 곱게 내밀어 내게 사과를 건네준 그대 연분홍빛 가을 열매에 첫 그리움이 영글기 시작하여라. 네 부질없는 한숨 그대 머리칼에 닿을 때 설레는 .. 글들/읽은시 2009.12.28
말맛 삼일절 노래 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진관리 창고에 갔다 오는 차안에서 이 노래.. 글들/읽은시 2009.04.30
어머니의 성경 어머니의 성경 - 박목월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은 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 성경이다. 이 두툼한 성경을 성경주머니에 넣어 두시고 사경회로 부흥회로 다니시며 돋보기 너머로 읽으시던 그 책이다. 이 두툼한 성경을 두 손으로 모아잡고 아들을 위하여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께 간구하시던 그 .. 글들/읽은시 2008.09.12
['80 한국현대시선]에서 죽음 앞의 예수 - 마광수 죽기는 싫다 어렵다 그러나 백성들을 속이기는 더욱 어렵다 천국이 가깝다고 가르쳤지만 은근짜 비유적으로 얼버무려 가르쳤지만 수도꼭지만 틀면 우유와 포도주가 쏟아져 나오는 천국 진짜 기가 막히게 행복에 겨운 천국을 기대하는 백성들에게 나는 신경질이 난다 하긴 그.. 글들/읽은시 2008.09.10
이홍섭 시집 <숨결>(현대문학북스, 2002년)에서 선지 해장국집 그 해장국집은 술집 골목 끝에 있었다. 새벽이 되면 여자들이 화장을 지우며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곤 했다. 해장국에는 날달걀이 따라 나왔다. 주인은 국에 풀어 먹으면 속이 부드러워진다고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이따금 검은 선지 위에 노른자를 동동 띄운 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 글들/읽은시 2008.05.06
하늘에 달이 오르고 하늘에 달이 오르고 하이네 시, 최정화 옮김 하늘에 달이 오르고 물결 위에 달빛이 고요하다. 그대 곁에 내가 있고 그대와 나의 가슴 함께 물결짓는다. 그리운 품에 황홀히 안기는 내 안식하는 물가에 인적은 없다. "바람결에 무엇이 들리오? 어찌하여 그대의 희맑은 손이 떨리오?" "부는 바람 소리가 아.. 글들/읽은시 2008.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