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를 좋아했었다. 혹은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온갖 비의와 상징이 가득하고, 스치기만 해도 중상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은 예리한 표현들이 복병처럼 숨어 있다 방심하는 순간 심장이나 머리를 푹 후비고 들어오는 그런 시. 남들과 구별짓고 싶은 치기였을지도 모르겠고, 지적 우월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통속적으로(직설적으로?) 진술하는 것보다 비틀고 꼬아서 표현하는 것이 현실을 더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길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 2-3년 부쩍 나이를 먹었다. 나의 특징이었던 강력한 마름모 턱선도 살이 찐 덕에 옛날의 날카로운 각(角)을 잃었다. 배도 나오고 어깨도 둥그스름해졌다. 처자식이 생기고 이쪽 저쪽 부모님들은 병들고 늙어간다. 위아래로 모두 부양해야 할 대상들만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미련처럼 시를 쥐고 있다면 꽉 붙잡아도 손 베지 않을 이런 시들만이 손아귀에 남으리.
가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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