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읽은시

어머니의 성경

멀리가세 2008. 9. 12. 16:26

어머니의 성경

                           - 박목월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은

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

성경이다.

이 두툼한 성경을

성경주머니에 넣어 두시고

사경회로 부흥회로 다니시며

돋보기 너머로 읽으시던

그 책이다.

이 두툼한 성경을

두 손으로 모아잡고

아들을 위하여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께 간구하시던

그 책이다.

붉은 연필로

언더라인을 그으시며

팔십평생을

의지해 사시던

그 책이다.

지금 내가 읽는

성구마다

어머니의 눈길이 스쳐가시고

어머니의 신앙이

증명해 주시고

어머니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어머니의 성경.

어머니의 기도로써

내가 받은 축복.

어머니의 기도로써

내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총

지금 나도

돋보기 너머로 어머니의 성경을

읽으면서

자식들을 위하여

주님께 축복을 간구한다.

만일 내가 이 성경을

자식들을 위하여

유물로 남기면

우리 집안의 기도는

삼대로 이어질 것이다.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주여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여

축복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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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일요일, 성경을 쌓아둔 서점 구석에서 칠순은 훨 넘겼을 할머니 한분이 쪼그리고 앉아, 돋보기 너머로  연신 눈을 껌벅이며 열심히 성경을 보고 계셨다. 아마 길건너 교회에 갔다 오면서 쓸만한 성경이 있나 싶어 들르셨겠지. 뉘라서 그 모습에서, 신성(神性)으로 이어지는 경건함을 느낄 수 없으랴.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우연히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들어섰을때 나를 감싸던 거룩한 감정이나, 산사(山寺) 밖으로 새어나오는 목탁소리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무념무상 그저 망연해졌던 경험은 이러저러한 논리를 들어 설명하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내심의 유신론자일지도 모르겠다, 신성의 편재함을 믿고 있는 것 같으므로. 다만 여호와가 됐든, 부처나 알라나 상제가 됐든 명명된 신들을 신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신론자일 것이다. (윽, 그럼 결국 노자로 빠지나?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네.) 모든 것에 신성이 깃들었다는 주장이 특정시대 특정종교에서는 무신론과 등치될 수 있겠지만 요즘같은 다종교시대에 종교간 평화를 유지하는데는 가장 긴요한 명제가 될 수도 있겠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내가 보기에 모든 종교는 태생부터 정치적이었고 당연히 지금도 그러하다. 교리상 정치개입의 논리가 있다거나 또는 신도중 정치인이 끼어 있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하나의 조직(그것도 거대한)으로 존재하는 한 비정치적으로 존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그 정치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다. 7-80년대의 천주교농민회나 기독교의 도시산업선교회 등은 서민,민주주의 지향적이었다. 반면 당시의 주류 기독교나 불교가 보여준 모습은 '철저한 비정치성'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비정치성'이 의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독재정권의 묵인이고 분단상황의 묵인이며, 숭미주의의 비판없는 추종에 다를 바 없었다. '(언술적) 비정치성'이 내포하는 이 어머어머한 '정치성'이라니! (물론 그들이 단지 묵인이라는 수동적 자세로 '정말' 중립을 지킨 것만도 아니다. 강력한 반공반북주의와 친미주의, 영어중심의 사회구조가 유지되는 한 기독교의 성장은 땅짚고 헤엄치기였으므로 그들은 의식했든 안했든 분단반공친미독재체제의 최대 수혜자임과 동시에 그 체제의 가장 광범하고 조직적인 선전자였다. 그러니 지금도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같은 이는 자기 교회 내의 반대세력까지도 무턱대고 '빨갱이'라고 몰아붙이지 않는가.)

 

  어머니의 유품으로 남은 낡은 성경책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나, 쪼그리고 앉아 성경을 고르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찌 경건함과 그에 배인 신성을 보지 못할까마는 종교인 스스로가 관용하고 경계하고 자기 교단 내부의 독선과 오류에 대해 깊이있게 반성적 사유를 하지 않는한 개인의 신실한 신앙은 자기 의도와는 다르게 그 독실함의 강도만큼 사회와 종교간 분열의 독성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 어, 쓰다 보니까 기독교 문제로 되어 버렸네. 불교나 다른 종교도 내부의 문제가 많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부딪히면서 야기되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거의 무의미한 수준이다 보니 자연스레 기독교 문제로 넘어간 모양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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