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타는 날 추적추적 비 내리고 바람 불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의 기억때문인지 이른 가을바람이 처음엔 반갑더니 종일토록 계속되자 종내에는 한기가 일었다. 이런 날 김종삼의 시집이 들어왔다네. 나와 이름자 비슷한 이 양반은 생전에, 천상병과 막상막하하는 기인이었다. 주특기는 돈 꾸기(물론 안갚는.. 글들/읽은시 2006.06.03
김만진 1. 서정은, 뭐라고 할까 가둬두는 힘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아무튼 내지르지 않고 쌓아두는, 내성적인 사람같은 것이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라고 마냥 쑥맥인 것은 아니지. 누구에게나 임계점은 있는 법이니. 2. 80년대의 민중시 중에도 서정은 있다. 특히 전반기의 시들은 직설이 허용되지 않았던 폭압.. 글들/읽은시 2006.06.03
네가 수채화라면 나는 널 그리는 화가이고 싶다 간밤에 공들여 쓴 연애편지. 그 밤엔 이게 과연 내가 쓴게 맞어 싶을 정도로 감동 그 자체였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보면 오바된 감정이 흘러넘쳐 글귀들이 죄다 번져있는 것 같다. 밤드리 부어라 마셔라 잔이 오갈 때 마주앉은 술친구는 더없이 정답지. 해서 할 말 못할 말, 좀스러운 말, 미욱한 말,.. 글들/읽은시 2006.06.03
다시 남자를 위하여 어떤 책에서였던가, 신라 문화의 특징을 말하면서 ‘육체성(이 용어가 정확한 기억인지는 잘 모르겠다)이 있다’는 표현을 썼었다. 조선시대 처럼 정신적인 가치만을 존중하지 않고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욕망을 인정하고 곧잘 표현해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삼국유사만 보아도 그런 기사들이 종종 나.. 글들/읽은시 2006.06.03
다카르패션 <GEO> 2000년 3월호 기사 중 하나. <다카르 패션>. 오랫동안 서구에 패션의 영감을 제공해 왔던 아프리카가 서서히 스스로의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내용. 같이 수록된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아프리카 사람들은 참 색감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햇빛이 많아서 그런가? 풍성한 햇빛 아래서는 .. 글들/읽은시 2006.06.03
박이도 몇 달전 시집 몇백권이 한꺼번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가져온 중간상 말로는 이게 모두 한 집에서 나온 거라고. 아닌게 아니라 책의 면지마다 이런 글들이 적혀 있었다. 박이도 선생님 혜존 박이도 선생님께 드립니다. 박이도 선생님 감사합니다. 등등등 학교 다닐때든가, 군대에서든가 이 양반 시를 .. 글들/읽은시 2006.06.03
봄비의 내력(來歷), 광주 봄비의 내력(來歷) 김혜숙 내 몸살을 대신 앓아주지 못하는 슬픔으로 나의 추위를 추워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으로 내 세월을 대신 살아주지 못하는 죄스러움으로 아, 이젠 괜히 나를 낳아 놓으신 후회로 어머니는 하느님 옆에서도 늘 울기만 하시어 온통 이 세상 모두를 적신다. 내 뜰에 몇 포기 꽃나무.. 글들/읽은시 2006.06.03
쑥고개편지 92년도 여름. 농활문제로 전주에 내려갔다. 그곳 무슨 일일찻집에서 한 시인을 만났다. 동행했던 분이 그녀와 안면이 있어 잠시 합석을 했었다. 익히 나는 그녀의 시명(詩名)을 알고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서 그녀는 제법 인기있던 학생 시인이었으니까. 몇마디 말을 나누다 내 아는 후배가 댁을 무척 .. 글들/읽은시 2006.06.03
이명 우리나라에 등단한 시인만 몇십만명이 된다지 아마. 여기에 자비로 시집을 내고 자칭 시인이 되는 사람까지 합치면 대한민국 시인들은 이 나라 농민들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그들이 쏟아내는 시집의 분량이 얼마나 될까? 어마어마하겠지. 그게 나에게 일을 만든다. 시집 골라내기. 물론 한.. 글들/읽은시 2006.06.03
전봉건 깔끔하게 낡은 옛책을 보면 곱게 늙은 부인네가 연상된다. 어디 한 구석 흠간 곳 없이 다만, 전체가 같은 농도로 바래버린 종이만이 세월을 증거하는 책에서는 단아한 향취가 묻어난다. 고등학교때 문학 참고서에서 보고난 후 종내 잊혀지지 않는 이 시도 늙으면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피아노 전봉.. 글들/읽은시 2006.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