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끄적여본시

계절병 (편린)

멀리가세 2006. 6. 18. 14:28
 

계절병 

     - 목련이 피었다고 말하자 현명한 노인이 머리를 저었다.

        목련은 늘 지는거라네. 지상으로 며칠 지는 거라네.



일기예보에서는 한차례 소나기라고 했건만

새벽부터 시작된 굵은 빗줄기는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그쳤다.


네 마음 속에도 비가 왔는지 모르겠다.

계절병의 열기를 내려줄 단비.

이별의 그 여름 뒤에 꼬박꼬박 여름이 오면

너는 그의 방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너는 믿고 있었어.

그와 만나고 나선 병을 얻게 된다고.


땅으로 무너지는 초인종소리.

손잡이를 잡고 쓰러져 있는 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리고 네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신열에 들뜬 너의 고통과는 달리 나의 집에는 목련꽃이 핀다.


며칠 동안 고통의 열로 기억을 태우고 너는 떠난다.

침대 위에 쪽지 하나.

-내년부턴 제발 날 들이지마.


네가 떨어뜨린 목련의 시신을 가지런히 염습한다.

목련의 손바닥에 스며있는 핏자국.

너를 앓아야만 나에겐 다시 나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져.


며칠 동안의 늦더위에 달구어졌던 거리는 제 몸의 열기를 식히느라 허연 김을 내뿜었다.

 

 

 

  (1998년쯤. 제대로 가다듬었으면 싶은데 언제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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