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느낀생각

빠구리 考

멀리가세 2009. 1. 22. 15:47

진관리 창고에 가다 검문소 사거리를 얼마쯤 지나다 보니 큼직한 간판이 하나 눈에 띈다.

<성진카센터 - 빵꾸, 오일...>

빵꾸라... 익히 알듯이 이말은 영어 puncture의 앞부분 punc만을 일본식으로 발음(パンク)해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지금도 그러나 모르겠지만 나 어렸을 적에는 남녀간의 상열지사도 이 말로 대신하곤 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전혀 무관해 보이는 빵꾸(punc)라는 기표가 섹스라는 기의를 포함하게 되었는지 여간 궁금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창고에 이를때까지 곰곰 생각.

오입 중에 거기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 커플이 종종 있다고 하니 혹시 거기서 힌트를 얻은 선조들의 해학일까? 아니면 구멍이 난다는 의미에서 여성만의 구멍(성기)을 떠올린 것일까? 혹은 좀더 고차원적으로 <빵꾸가 나면 위험하다>는 연상작용이 아래와 같은 식으로 확대된 것은 아닐까?

(예) 처녀가 섹스를 하면 신세 조진다.

여기서 처녀의 섹스는 전통사회의 질서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므로 미혼여성의 섹스, 유부녀/유부남의 불륜 등을 모두 포함한다. 즉 이 연상구조는 '(안좋은 무엇을) 하면 (안좋은 무엇이) 생긴다'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性은 경계하고 금기해야 할 대상으로 비하되었으므로 이런 등치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빵꾸는 비속어로 쓰인 말이 아닌가.

뭐,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니 내키는대로 생각하면 되지만서도 그래도 탁 무릎을 칠만한 근사한 유추가 되지는 못해 좀 찜찜한 상태로다가 창고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빵꾸 빵꾸 빵꾸를 되뇌이다가 말이 새어 그만 빠구리하고 잘못 발음을 해버렸다. 그 순간 머리에 번뜩 드는 생각.

punc가 パンク면 빠구리도 혹시 영어 단어를 일어식으로 옮긴 것 아닐까? 같은 구조로 환원해서 비슷한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그래, 맞다. 이 단어 - fuck. 일어도 우리말처럼 p음과 f음 구분이 없으니 fuck는 빠꾸(パク)쯤 되지 않을까? 여기다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이'(이 이, 저 이 할때나, 짐 나르는 이 할때의 이) 자를 덧붙여 빠꾸이로 조어를 했다가 음을 편안하게 발음하기 위해 빠구리로 바뀐 것 아닐까?

만약 이 두 단어가 내가 추측하듯 동일한 조어방식으로 만들어진 단어라면, 영어에 대해 별 조예가 없던 선조들이 섹스를 의미하는 빠꾸(fuck)를 음이 서로 비슷한 빵꾸와 혼용해서 쓰는 바람에 영어 puncture는 예기치 않게,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야 있는 먼 이국의 땅에서 sex라는 의미를 하나 더 얻었으니 언어는 이렇게해서 더욱 더 풍성해지는 거구나하는 깨달음 앞에, 감개까지 다 무량해졌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슬금슬금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할 쯤 창고일을 마치고 차에 올라탔다. 혼자서 돌아가는 길 심심하니 세상소식이나 들어 볼라고 라디오를 틀었다. 대번에 용산지역에서 철거반대를 하던 철거민 여럿이 죽었다는 소식이 긴급하게 타전되고 있었다.

아하, 내가 요때 써먹을라고 창고 오는 길에 그말의 뜻을 그토록 궁구(窮究)했던 것이로구만.

 

이명박, 이 XXX야, 빵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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