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5월 13일 대구 50사단 훈련소 입소.
입소한지 며칠후, 고약스럽기로 악명 높던 이씨 성 가진 조교의 훈련시간. 둥근 판이 달린 훈련교구에 문제가 생겼는지 자꾸 판이 떨어졌다. "너, 나와!" 내가 호명되었고 불려나가 판 뒤로 삐져 나온 나사를 잡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사의 돌출부는 불과 5미리 정도. 엄지와 검지로 간신히 집을 수는 있었지만 스프링이 달려 튀어나가려는 교구판의 힘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어!'하는 순간 떨어져 버리는 교구판. "이 새끼, 몇초를 못버텨!" 눈을 부라리며 뇌까리는 이조교. "좋다. 한번 기회를 더 주지. 판을 줍습니다. 원위치 시키고 다시 잡습니다. 또 놓치면 죽습니다." 나사를 있는 힘껏 쥐고 버텨 보았지만 이번에도 겨우 10초를 넘기지 못했다. 더욱 사나와지는 이조교. '노냐, 여기 놀러 왔냐. 마음 좆나 편하지? 대충 해도 될 거 같지? 개새끼! 마지막이다, 마지막. 한 번 더 잡습니다!"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힘을 줘 보았지만 애초에 사람 힘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이조교, 발로 배 한번 걷어차고 지랄같은 욕설을 퍼부은 후 대가리 박어! 2-30분쯤 흘렀을까? 머리통은 아프다 못해 무감각해 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최대한 벌린 다리 가랑이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왜 그때였는지 모르겠지만 잊고 있던 그날의 날짜가 떠올랐다. 5월 18일. 하늘에서는 절정을 맞이한 5월의 아카시아 꽃씨가 눈 내리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눈물이 핑 돌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