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꾼
음산한 날씨와 미묘하게 교감하는 단어, 중세.
희망에 대하여?
끄덕 끄덕
어느날 한번쯤...
밤들어 기어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길이나 파들어간 무덤에는 있으라는 시체는 없고
달랑 마녀의 수정구슬 하나
거리엔 검은 옷을 입은 수사와 수녀들
모두들 겸손한 어깨로, 정오의 정적을 담은 얼굴로
비를 피해 각자의 수도원을 찾아 흩어졌다.
인간의 권한 밖에 있는 신의 은총을 위해 오늘도 성실히
하루를 견딜 각오들.
어느새 텅빈 거리엔 서로를 휘감은, 복희와 여와 같기도 한 뱀지팡이를 짚고
노새 한 마리 촉촉이 젖고 있었다.
쾅, 쾅
내 다리 내 놔라, 내 다리 내 놔라!
언제 쫓아왔는지 대문 밖엔 다리 없는 시체
솥에는 언제나처럼 펄펄 끓는 물
누구에게는 이것도 훌륭한 다리가 되려나
나는 담장 너머로 힘껏 구슬을 던졌다.
내일은 어느 묘를 파 볼까
싱싱한 다리가 나와야 하는데...
도굴꾼은 입맛을 다시며 소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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