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느낀생각

영화 <꽃잎>을 보고

멀리가세 2006. 6. 4. 21:52

<꽃잎>, <꽃잎>의 언어

 

 

하나. 두 시(詩)

 

  학살의 원흉이 지금/ 옥좌에 앉아 있다/ 학살에 치를 떨며 들고 일어선 시민들은 지금/ 죽어 잿더미로 쌓여 있거나/ 감옥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저편 아메리카에서는 학살의 원격조정자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 보아다오 파괴된 나의 도시를/ 보아다오 낫과 박살난 나의 창을/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 보아다오 학살된 아이들의 눈동자를//.......//학살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선 민중들의 수괴도 지금 옥좌(獄座)에 앉아 있다/ 어느 자리가 더 편안한 자리이고/ 어느 자리가 더 떳떳한 자리이냐

                        - 김남주   학살 3, 4 중에서


  저렇게도 불빛들은 살아나는구나/ 생솔 연기 눈물 글썽이며/ 검은 치마폭 같은 산자락에/ 몇 가옥 집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은 살아나며/ 산은 눈뜨는구나/ 어둘수록 눈 비벼 부릅뜬 눈빛만 남아/ 섬진강물 위에 불송이로 뜨는구나// 밤마다 산은 어둠을 베어 내리고/ 누이는 매운 눈 비벼 불빛 살려내며/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은 강물에 가져다 버린다/ 누이야 시린 물소리는 더욱 시리게/ 아침이 올 때까지/ 너의 허리에 두껍게 감기는구나// 이른 아침 어느새/ 너는 물동이로 얼음을 깨고/ 물을 퍼오는구나/ 아무도 모르게/ 하나 남은 불송이를 물동이에/ 띄우고/ 하얀 서릿발을 밟으며/ 너는 강물을 길어오는구나// 참으로 그날이 와/ 우리 다 모여 굴뚝마다 연기 나고/ 첫날밤 불을 끌 때까지는/ 너의 싸움은, 너의 정절은/ 임을 향해 굳구나

                       - 김용택   섬진강 2


  두 시 모두 80년대 군부독재 치하에서 쓰여진 작품이다. 느껴지듯 직설은 단호하게 행동을 촉구한다. 동의하느냐 아니냐 둘중의 하나다. “상황은 이러하며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당신은 어디에 서겠는가!”.  반면 은유는 이해를 위해 해석을 필요로 하고 해석의 과정 속에서 ‘내면으로 안착’된다.

  80년대는 전사를 필요로 했지만 모두가 다 전사가 될 수는 없었다. 전사가 폭력적 구조(국가)에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방식으로 그 시대를 살아 간다면 전사가 되지 못한 이들이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은 忍苦이다. 전사가 지배구조를 전면 부정한다면 인고의 사람들은 그 지배구조 안에 있으면서 지배구조를 거부한다. 어쩔 수 없이 전사의 언어는 직설이고 인고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은유이다.

  누이는 그 누구(새세상이든, 전사이든, 이념이든)를 향한 열망(불송이)을 꺼뜨리지 않으며 정성을 다해 새벽녁 강물(첫새벽 첫물,정한수)을 뜬다. 누이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가슴을 풀어 헤쳐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가 오는 날 오직 그를 위해 제 스스로 치마끈을 푼다.

 

 

둘, 꽃잎 


  @ 19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로 돌아가 보자. 계엄군의 광주진압을 앞두고 시민군의 한 여성이 광주 전역을 돌며 절박하게 투쟁을 호소한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몰려 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집결해서 저들을 물리칩시다. 시민여러분, 여러분의 아들 딸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가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시민 여러분!”

  분명 잠을 자고 있던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귀를 막고 애타는 호소를 애써 외면해야 했다. 도청으로 달려가는 것이 옳지만, 그것은 곧 죽음이란 걸 알기에......

  도청은 진압되고 끝까지 저항하던 시민군들은 학살되었다. 27일 아침 쾡한 얼굴들이 도청 근처를 배회했고 자신의 비겁에 몸서리치다 결국 미쳐 버렸다. 어머니의 손을 뿌리친 소녀처럼 지극히 정상적으로 미쳐 버렸다.


  @ 억압구조(국가)의 폭력은 ‘광주의 진압’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국가는 후환을 없애고 폭력을 온당화하기 위해 미치지 않은 정상인들에게 ‘폭력을 공유시키는 폭력’을 가한다.

  장씨를 포함한 노가다 4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광주가 생난리였다는구먼. 임신부 배를 가르구 여학상들 가슴을 도려냈다능마. 2천명이 훨씬 넘게 죽었다는디...”

  그러나, 이 사실은 다른 인부의 말한마디에 그냥 묻혀 버린다.

  “무신, 다 유언비어랑게. 정부에서 그러지 않여 채 100명도 안 죽었다구, 또 그 놈들이 전국에 숨어 있던 고정간첩들인디 이번이 다 광주에 모여 일을 일으킨 거랑게”

  고정간첩, 그말로 정리된다. 정상인들은 국가가 제공한 폭력에 동참한다.

  또 있다. 5시가 되자 국기 하강식이 거행된다.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한곳을 응시한다. 폭압구조가 제시한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향한 일사분란한 참여 - 모두에게 가해진 제도적 폭력이다. 그 부동의 화면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미친 소녀와 장씨뿐. 여기서 화면은 말한다.

  “비정상적인 것은 소녀가 아니라 그들이다.”


  @ 광주에 관한한 우리들은 분명 가해자였다. 적어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것이 폭력구조의 공작에 의한 것이든, 무지에 의한 것이든(물론 후자일지라도 그것은 전자와 무관할 수 없다. 진실을 은폐하고 심연에 묻어 버린 공작도 국가적 폭압에 의해 가능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무식하고 무기력한 장씨(80년대의 일반대중, 내지는 상황)에게 광주가 따라 붙었다. 장씨는 그 미친년을 쫓기 위해 노력하지만 소녀는 끝끝내 따라 붙는다. 80년대 그 어떤 노력도 광주를 떼어 놓을 수는 없었다. 장씨가 소녀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혹한 학대와 ‘가둠(격리)’뿐이다. 장씨가 소녀에게 가한 학대 중 가장 잔혹하게 묘사되는 것은 ‘강간’이다. 억압구조가 광주에 가한 폭력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制”하에서 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인 강간으로 투사됨으로써 장씨의 폭력은 개인의 폭력이 아닌 사회적 폭력으로 전화된다.

  시간이 흐르고 몇몇 사건을 겪으면서 장씨는 소녀를 차츰차츰 이해하게 된다. 옷을 사주고, 목욕을 시킨다. 가두어 두지도 않는다. 그런 어느날 소녀가 옷을 깨끗이 갈아 입고 장씨 숙소 밖으로 나간다.

  여기서 상황이 역전된다. 이번에는 장씨가 소녀의 뒤를 쫓는다. 공동묘지에 이르러 소녀는 누구의 무덤인지도 모를 그 무덤들에 꽃 한송이씩을 놓으며 오빠라고 부른다(오빠는 강제징집 되어 의문사했다). 그리고 한 무덤아래서 5월 그 날을 회상한다. 소녀의 눈이 뒤집히고 괴상한 소리가 소녀의 입을 통해 터져 나온다. 신들린 무당의 표정이다. 소녀는 자신의 한을 그렇게 토해 낸다. 그것은 한판의 씻김굿이었다. 소녀는 쓰러지고 장씨는 눈물 흘린다.

  그 일이 있고 소녀는 장씨를 떠났다.

  소녀가 떠난 순간부터 장씨는 소녀를 추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를 찾아온 소녀의 오빠 친구 일행에게 장씨는 그 소녀를 찾아 주면 잘 해주겠다고 매달리지만 물론 소녀를 찾을 수는 없다. 장씨가 그 소녀의 아픔을 이해했더라도 소녀에 대한 폭력의 가해자(자의든 타의든)로서 장씨는 그 짐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광주의 고통을 이해하고 우리가 위령탑을 세우고 광주민주화항쟁이라고 이름 하고 금전적 보상을 한다해서 광주의 아픔을 치유될 수 없는 것처럼, 죽은 어머니가 살아 돌아 올 수 없는 것처럼

소녀는 떠날 수 밖에 없고 수많은 장씨들은 찾지 못할 소녀를 그리워 하며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 장씨는 동시에 또다른 피해자인 것이다.


  @ 소녀를 추구하는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오빠의 친구들. 그들은 소녀의 행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김상태를 만났다. 그는 예전에 죽은 자신의 어린 연인을 생각해서 광주를 빠져나온 미친 소녀를 구해 주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 소녀가 자신의 옛 연인이 살아 돌아온 것이라 믿으며. 광주의 소녀는 그의 곁을 떠난다. “소녀의 고통은 김상태의 감상 속에서 해소될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상태를 만난 오빠 친구들의 처지는 달랐다. 그들은 김상태가 제공한 술과 방에서 김상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감상에 빠져들 수 있었다. 헝클어진 이불, 나뒹구는 술병, 그리고 널부러진 오빠 친구들 - 감독은 이 화면을 통해 ‘광주를 이해했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광주찾기(소녀찾기)라는 것이 어느새인가 감상의 차원으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 김상태가 죽은 어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우리는 좌절된 변혁을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김상태가 소녀에게서 죽은 연인의 부활을 본 것처럼 우리도 광주의 복귀를 통해 변혁의 부활을 꿈꾼 것은 아닐까? 소녀의 고통을 느끼기 이전에.”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광주에 대한 또 한명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오빠 일행은 결코 소녀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부분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감독의 의도는 그런 것 같다.


  @ 어느 누구도 소녀를 찾지 못했다. 영원히 아무도 소녀를 찾을 수 없다. 광주는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달려와 내게 꽃이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주를 이해한 그 순간부터 광주는 ‘진정으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씻김굿과 위령제와 역사적 기술과 금전적 보상과 학살자에 대한 처단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광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쉽게도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광주는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이고 영원히 남아 있을 문제이다.

 

 

셋, 언어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5월을 노래마라.

  학살과 군화발과 그에 맞서는 피의 저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 김남주님의 시중에서


  광주는 늘 그랬다. 광주는 감상 이전에 분노였다. 참상의 충격으로 실성한 소녀가 아니라 그 학살의 피바다 앞에서 새로 일어나 학살자의 가슴에 꽂히는 화살이 되어야 했다. 80년대는 그런 어법이 압도적이었다. 물론 옳았다.

  90년대가 되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형식적인 민주절차가 갖춰졌다. 광주학살자가 법정에 섰다. 물론 기만적이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현실에 일견 안도했다. 그리고 급속하게 경제의 논리에 빨려 들어갔다. 사회주의가 몰락했다. 진보의 전망은 진공상태에 빠져들었다. 경제의 거대한 발전은 사람들을 무척이나 바쁘게 만들었다. 국제경쟁력에 뒤지면 한국사회의 발전은 없다. 데모는 쓸데없는 국력의 낭비다. 기업발전과 생활 향상이 90년대를 주름잡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대학 1학년때부터 토익점수관리하랴, 학점관리하랴 정신이 없다. 직장인도 아침 8시 출근, 저녁 7-8시 퇴근, 각종 문화생활 등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그 속에서 광주는 솔직히 잊혀지고 있는지 모른다. 다 끝난 문제처럼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80년대 폭압의 상황보다 광주는 더 외로워졌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 “광주가 더이상 투쟁의 메시지가 아니라 씻김굿(치유)의 차원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할 수 없다. 90년대의 상황에서 은유의 언어는 가장 현실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은유의 언어 - 이해를 위해 해석을 필요로 하고 해석의 과정에서 의미가 내면으로 안착되는 그 언어.

  “한 미친 소녀가 당신에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가 가거든 그 잠시동안 당신은 그 소녀를 귀찮아 하지 말고 잘 대해 주라.” (영화의 마지막 나래이션)

 

  이것이 지금 남아 있는 우리들이 광주를 위해 - 우리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고 또한 해야 할 일이다. 전망부재의 시대라고도 하고 열정이 사라진 시대라고도 하는 지금, 개별적 야망이 범람하는 지금, 영화는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한 미친 소녀를 귀찮아 하지 않을 마음을 우리 가슴 한구석에 남겨 두라 한다. 쉬운 일이 아닌데 영화는 그것을 의무라고 말한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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