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읽은시

현실에서 탈속으로, 탈속에서 현실로

멀리가세 2007. 11. 9. 21:30

  유명한 천상병의 유고시집 <새> 초판을 구했다. 그것도 띠지까지 완벽하게 원형대로 있는 책을. 익히 알려졌듯 이 시집은 천상병이 지인들과 연락이 완전히 끊긴 채,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을때 동료들이 그가 죽었으리라 판단하고 힘을 보태 상재해준 시집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살아 생전에 나온 유고시집'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막상 김구용이 쓴 발문을 읽어보니 주변사람들은 그가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집 어디에도 유고시집이라는 글귀는 없다. 추측컨대, 나중에 천상병이 살아 돌아오자 동료 시인들이 그가 없는 사이에 나온 이 시집을 두고 '이게 자네 유고시집이야!'리고 우스개 소리를 했던 것이 천상병이라는 기인 캐릭터와 길항하면서 '살아 생전에 나온 유일한 유고시집'이란 전설을 만들었으리라.

  이런 일화에서도 알 수 있는 천상병의 기인 행적은 그의 시에 대중적인 관심이 쏠리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왔지만, 그 관심의 영역이 주로 탈속적인 후기시로 한정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와 그의 시)를 편협하게 이해하도록 만들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집에서 나는 오히려, 60년대라는 시대상황에서 고뇌하고 고난받았던 한 자유로운 지식인(그에게 있어 자유는 단순한 정치적 자유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에 대한 탈속적 자유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인위적으로 형성된 억압적 요소 전반에 대한 자유라면 너무 포괄적일까? 조금씩 뉘앙스는 다르지만 김수영, 신동엽, 그리고 천상병의 시에서 나타나는 자유의 의미는 시대성 속에서 일치되는 측면을 또한 갖는 것 같다.)의 풍모가 고스란히 담긴 몇편의 시가 더욱 와 닿았다. 그는 현실에서 탈속으로 나아갔을지 모르지만 읽는 이들의 접근은 '탈속에서 현실로'로 되어야 한 시인을 이해하는데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 생각하면서.

 

 

              그날은

                      - 새

 

 

              이젠 몇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샤쓰 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살과 고통

              그 어느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71년 2월 월간문학)

 

* '그날'은 말할 것 없이 그가 동백림사건으로 검거되어 혹독하게 고문당했던 그날이다.

 

 

 

              이스라엘 민족사

                                   - 主日

 

              볼프간크 헤겔은 [역사

              철학] 개념정립 때문에 각

              민족의 역사를 두루 살폈

              읍니다. 그 나라 그 민족

              만의 냄새가 안나는,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역사와

              맞먹는, 민족사를 찾았읍

              니다. 누가 영국사를 권했

              지요. 불만이었읍니다. 헤

              겔은 드디어 히브리사 이

              스라엘 민족사로서 비로소

              [역사철학] 개념정립의 터

              전을 닦았습니다. 구약

              이지요? 그 간난과 고초

              지요? 하나님, 저의 지난

              날, 내일도 살아갈 연월이

              이스라엘 민족사이고자 원

              하며 웁니다.

 

                    (71년 8월 현대문학) 

 

* 절대정신의 자기구현 과정과 하나님의 섭리로서 이스라엘 민족사는 연결될 것이다.

  현실의 고난이나 모순은 구원을 위한 필연적 예비라고도 할 수 있겠지.

  마지막 구절은 천상병 개인의 구원에 대한 염원이기도 하겠지만 고난받는 우리 민족에 대한

  구원의 희구와도 겹치면서 '웁니다'의 뜻이 더욱 간절해진다.

 

 

 

             

 

 

                최신형기관총좌를 지키던 젊은

              병사는 피비린내 나는 맹수의 이

              빨같은 총구 옆에서 지루하기 짝

              이 없었다. 어느 날 병사는 그의

              머리 위에 날아온 한 마리 새를

              다정하게 쳐다보았다. 산골 출신

              인 그는 새에게 온갖 아름다운

              관심을 쏟았다. 그 관심은 그의

              눈을 충혈케 했다. 그의 손은 서

              서히 움직여 최신형기관총구를

              새에게 겨냥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새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수풀 속에 떨어진 새의 시체는

              그냥 싸늘하게 굳어졌을까. 온

              수풀은 성바오로의 손바닥인 양

              새의 시체를 어루만졌고, 모든

              나무와 풀과 꽃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부르짖었다. 죄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 죄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

 

                                 (66년 9월 문학)

 

* 어느 책에선가 천상병 시인이 베트남 파병에 반대하는 글을 실었다가 곤욕을 치뤘다는 글을

  읽었는데  이 시를 읽다보니 그 이야기가 떠오르네. 마지막 문구 ' 죄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에는 단순한 표현과 리듬에 강렬한 호소력이 담겨 있다. 읽기에 따라서는 빼어난 반전시

  (反戰詩) 아닌가?

 

 

                   

   

                          천상병 유고시집 <새> (1971년 초판, 우문사) 앞표지

                                                  題字/扉: 김구용

 

                   

 

                                                             뒷표지

 

                  

 

                                                        앞속표지

 

 

                  

 

                                                   초상화: 김영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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