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읽은시

네가 수채화라면 나는 널 그리는 화가이고 싶다

멀리가세 2006. 6. 3. 00:53
 

간밤에 공들여 쓴 연애편지.

그 밤엔 이게 과연 내가 쓴게 맞어 싶을 정도로 감동 그 자체였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보면 오바된 감정이 흘러넘쳐 글귀들이 죄다

번져있는 것 같다.

밤드리 부어라 마셔라 잔이 오갈 때 마주앉은 술친구는 더없이

정답지. 해서 할 말 못할 말, 좀스러운 말, 미욱한 말,

이놈 욕, 저놈 욕 흉금없이 털어 놓았다가

아침에 술 깨면 얼마나 후회를 했던가. 자신의 가벼움에 대해.

그러나 정말이지 어느 쪽이 진정한 나일까?

밤에는 정서가 고양되어 이성의 규율 속에 가리워졌던 나의 본성이

드러난 걸까, 아니면 밤의 마력이 던져준 감성에 취해 나의 본성

에서 멀어진 걸까?





사랑으로 탄 커피




사랑이 녹아 흐르네.

깊은 심연 속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내 마음을

부드럽게 적셔 주고는

이내 그대의 마음 한쪽을 넘나드는

짙은 향기의 파도.


사랑이 녹아 내리네.

정갈한 찻잔 속으로


블랙처럼 진한 안개 속에

베일을 벗고

새로이 마시는

사랑으로 끓인 커피 한 잔.


-김숙경 시집 <네가 수채화라면 나는 널 그리는 화가이고 싶다> 중에서




사춘기적 감수성의 낙서시.

한때 ‘창궐’하였던 저런 종류의 시집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이렇듯

단순명료했다.

뭐, 달리 평가할 도리도 없긴 한 것 같지만...


그러나 알 수 있는가?

사춘기 시절에는 저 감수성이 본질였는지.





* 90년대 초중반이었던 것 같다. 시를 좋아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친구들의 시를 엮어 출판을 해주던 시절. 그걸

업으로 하는 출판사도 여럿 있을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었다.

그렇게 나온 시집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요즘엔 통 그런

게 없다. 감수성을 소통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문자화된 글을 출판하는 것이 꽤나 멋들어지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는 유효한 통로였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그런 욕구들이 일차적으로

소화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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