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끄적여본시

안나 아흐마또바

멀리가세 2008. 10. 2. 11:21

 

느릿느릿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토마토 쥬스를 홀짝이며

러시아, 추운 나라,

안나 아흐마또바의 시를

읽는다.

 

늘어질대로 늘어진

늦더위의 기세에 눌려

가을은 내내

9월의 언저리를 떠돌다

막판에 몰려서야 성큼

제 계절에 발을

담궜다.

 

그리고 시월,

나무의 그림자들이

그리움처럼 늘씬하다.

언제나처럼

붙잡을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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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경계

                       엔. 베. 엔 에게

                       안나 아흐마또바

 

 

사람들의 친근함 속에는 알 수 없는 경계가 있으니,

사랑도 정열도 그 경계를 가로지를 수 없는 것 -

장엄한 정적 속에서 두 입술이 합쳐지고

가슴이 사랑으로 산산히 부서진다 해도.

 

여기에선 우정도 무력하고,

넋이 자유롭고 색욕의 느릿한 권태를 모르는

숭고하고 열렬한 행복의 나날에도,

여기에선 무력하다.

 

이 경계에 돌진하는 이들은 미쳐가고,

여기에 도달한 이들은 번민으로 휩싸이느니.....

이제 그대 알았을 테지요, 왜 내 가슴이

그대의 두 손 밑에서 두근거리지 않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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