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책이야기

정통 합기도교본

멀리가세 2009. 9. 8. 17:27

 

반질반질한 마루바닥, 일본식 건물의 격자 유리창. 오후 4시의 햇빛이 창가에 달린 샌드백의 그림자를 마루바닥 위에 길게 늘어 뜨릴때 쿠우웅, 시범 상대자의 몸이 공중에 떴다 바닥에 내리 꽂혔다. 유난히 크고 긴 울림.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꼬마들의 입에서 이내 탄성이 터졌다. 히야-

조치원 왕성극장 근처에 있던 합기도장, 1970년대 중반 사촌형을 따라 몇번 가봤던 곳. 강인함에 대한 동경-

이제 갓 국민학교에 들어간 꼬마에게 강인함이란 그저 남을 압도하는 힘이었겠지. 곧잘 공상했듯 짝사랑하던 소녀가 깡패들에게 봉변의 위기에 처했을때 짜잔 나타나 일거에 휙휙 처단하고 소녀에게서 사랑의 눈빛을 받는 것. 단순하건만, 아니 단순하기에 더 명료하게 이것이 '권력에의 의지'의 원형이 될지도 모르지. 남을 압도하는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다. 중학교 들어가서는 생각이 조금 더 확대됐다. 합기도장에서 육체의 힘으로 남을 제압해봐야 그것이 열명이 되겠나, 백명이 되겠나? 정치가든, 기업인이든, 법조인이든, 학자이든 조직과 돈과 사람의 마음을 잡으면 수천 수만 수억을 이겨버리지 않는가? 그래, 권력은 합기도장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려서는 권력에의 의지를 공상의 목장에 풀어놓고 꼴 먹이고 물 먹여서 잘 키우지. 비상하고 힘 좋은 젊은이로 자라서는 응당 스스로 그 권력이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그러나 대개의 삶은 둘은 고사하고 남 하나도 이기기 어렵다는 거, 그것이 문제지. 어느 순간 허겁허겁 버텨내고 있는, 나약한 자신을 발견하는 거지. 그렇게 권력에의 의지는 포기되는 것인가?

 

조치원 합기도장이, 그 어린 나이에도 어딘가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어디였을까, 어디였을까?

여럿이 앉는 긴 나무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그곳에 때론 나직히 웅얼거리는 사람들이, 때론 순망한 눈망울로 전방의 한사람을 응시하던 사람들이, 때론 망연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즐비하게 앉아있었다. 간혹 한낮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텅빈 의자들이 힐긋 돌아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앞을 바라보곤 했었다. 그럴때면 으레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렸다. TV에서나 몇번 본 장엄한 악기의 환청이 유장한 떨림으로 예배당을 압도했다. 

일곱살 무렵 집 앞에 있던 교회, 길 건너면 바로여서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던 곳.

합기도장과 교회라니, 이 웬 잘못된 만남?

나같은 일곱살 배기야 놀이삼아 갔다 쳐도 그 교회에 다니던 어른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아 권력의지를 포기하고 신께로 귀의한 사람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곳의 분위기를 합기도장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단 말인가? 신은 권력의지의 종언이 아니라 변용이었단 말인가?

 

검은 띠의 합기도복을 입은 신이 신도를 위협하는 외부를 바닥에 메다 꽂는다. 둘러앉은 신도들이 무릎을 꿇고 경배한다. 사범님이 꼬마들에게 배움의 댓가로 강인함을 약속하듯 신은 믿음과 십일조의 댓가로 구원과 내세로 무장하여 결코 세상과 타인에게 지지않을 의지를 신도에게 나눠주신다.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아멘.

(비록 빨간띠일 망정 순복음교회나 소망교회 찍힌 도복을 입고 다니면 좀 덜 건들기도 하고...)

 

 

* <정통 합기도교본> (塩田剛三 저, 정문도서 발행, 1970년)

이 책 표지 그림 들여다 보다 든 생각을 뒤죽박죽 적게 되었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 책인데 첫 장의 제목을 <합기도의 권장>이라 뽑아 놓고 합기도의 역사와 효용 등을 많은 분량(60여쪽)을 할애해 설명해 놓았으며 두째 장인 <합기도의 실제>에서는 흑백사진을 중심으로 합기도의 기본기술을 해설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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